'바꾸면 잘 풀리려나'… 10년간 150만명 개명 신청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좌완 투수 ‘오재영’(31)이 지난 13일 잠실 두산전에 등판하자 전광판에 ‘오주원’이라는 새 이름이 떴다. 신인왕(2004년) 출신인 아들이 계속되는 부상으로 굴곡진 선수 생활을 이어가자, 보다 못한 부모님이 “이름을 바꿔보자”고 권유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개명 승인을 받은 오 선수는 이제 오주원이라는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는다.

수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권모(33)씨는 재작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지금도 합격한 데는 ‘개명’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권씨는 “시험에 계속 낙방하자 어느 날 부모님이 사주를 보고 와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면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개명했더니 다음 시험에 바로 합격했다”며 웃었다.

법원의 개명 허락을 받아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출생신고서에 잘못 기재한 경우’나 ‘놀림감’이라는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취업이나 결혼, 시험 합격 등을 위해서’로 이유가 다양해지고 있다.

22일 대법원에 따르면 개명 신청은 2005년 7만2000건에서 이듬해 10만9000건으로 늘었고, 2009년 이후에는 해마다 15만∼17만건에 이른다. 10년(2006∼2015년)간 개명을 신청한 사람만 151만9524명으로 국민 약 34명 중 1명꼴이다.

개명 허가율도 2000년 75%에서 200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신청자의 95%가량이 새 이름을 얻었다. 2005년 11월 대법원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개인 행복추구권을 위해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이전까지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개명할 수 있다는 게 판례였다. 일각에서는 그해 여름 시청률 50%를 넘긴 인기 절정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MBC)’의 인기도 한몫했다고 평가한다. 이름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으로 개명을 원했던 주인공 김삼순(김선아 역)에게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대법원 판결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이 개명의 문을 활짝 열어준 뒤로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최근에는 극심한 취업난 등 시대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철학관을 운영하는 이모(57)씨는 “취업이나 고시 합격 등을 위해 개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며 “부모의 선택이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의 달라진 세태가 투영된 듯하다”고 말했다.

신생아 이름에도 유행이 있는 것처럼 개명 신청자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이름은 따로 있다. 지난해에의 경우 남자 이름은 민준-현우-도현-지훈-서준 순으로, 여자는 서연-지원-수연-서윤-서현 순으로 인기가 많았다.

개명 절차는 보통 1∼3개월이 걸리고 비용은 2만원 정도 소요된다. 최근 개명 신청자가 폭증하면서 이를 대행하는 법률서비스도 성행하고 있다. 서울 삼성동의 한 법무사는 “개명신청서 작성에서 법원 제출, 허가 후 호적정리까지 대행하는 변호사나 법무사들이 꽤 있다”며 “보통 수수료로 12만∼16만원 정도를 받는데 개명이 성공한 뒤에 받는 후불제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개명 신청은 횟수에 제한이 없지만, 재개명의 경우 허가율이 낮은 만큼 개명을 원한다면 처음에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8월 22일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