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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따라… 사회환경따라… 이름도 유행탄다
    ◎고대 ­‘혁거세’ ‘거칠부’ 많이 등장/일제­‘지’‘자’‘일’ 등 창씨개명 잔재/현재­PC통신·인터넷ID 보편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미 신화가 됐다. 지금은 ‘옥경이’를 노래하는 구세대 앞에서 신세대는 ‘오, 지니∼’를 외친다. 비록 영화나 노래제목에 나타나는 몇자 안되는 이름이지만 세대차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름에 있어서도 유행에 민감한 건 여자인 듯하다. ‘뚱보­홀쭉이’ ‘키다리­꼬마’라는 꼬리표를 덧붙여야 겨우 구분이 됐던 그 많은 60년대의 미자·순자, 70년대의 은영·미경이는 이제 누구누구의 할머니·엄마가 돼버렸다. 대신 요즘 초등학교 출석부엔 보람·다운이가 몇 명씩­. 윤하늘빛따사로움온누리에 처럼 ‘이름 세자’아닌 ‘이름 열두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만큼은 본인 뜻과는 상관없다. 부모님이나 친척어른 또는 작명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동운명체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살아있을 때 뿐이랴. 시신은 한줌 재로 변했어도 해맑은 눈망울을 지녔던 박초롱초롱빛나리양의 이름은 영원히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가슴 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 그만큼 이름에 얽힌 일화들과 이름의 변천사는 그 당시 사회상과 역사를 읽게 해주는 좋은 자료들이 된다.

    사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여자나 천한 계급 사람들에겐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인하대문과대학장 김문창 교수는 “한자가 들어오기 전 고대 역사책에 등장하는 이름을 보면 ‘혁거세’ ‘이사부’ ‘거칠부’ ‘사다함’ 등 토박이 우리말에 바탕을 둔 독특한 세음절 이름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한자가 보편화된 통일신라 이후부터 차츰 중국식 두음절 이름으로 통일되었다는 것. 돌림자가 생긴 것도 이때쯤부터.

    우리 이름이 최대의 수난을 겪게 된 것은 역시 일제시대다. 창씨개명의 강요로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3백20만가구의 조선인이 이름을 바꾸었고 여자의 경우 ‘자’나 ‘지’, 남자는 ‘낭’ ‘웅’ ‘식’ ‘일’ 등이 그 잔재로 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만 창씨개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1940년대 유럽이나 미국의 유태인들 중에는 나치의 압박을 피하거나 사회적 출세를 위해 유태인식 이름을 스스로 버린 경우도 많았다.
    하긴 이름을 꼭 하나만 가졌던 것도 아니다. 한자이름과 함께 중국에서부터 전해져온 관습에 따라 두개이상의 이름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먼저 어린 시절에 부르던 아명과 성인식(관례)후에 부르던 관명이나 자가 있다. 옛날엔 이름이 천해야 오래 산다고 해서 고종황제의 아명도 ‘개똥이’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또 ‘우아한 호’란 뜻의 아호나 본래는 집의 이름을 뜻하면서 그집 주인도 일컬었던 당호 등을 부르기도 했다.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허주’는 바로 신한국당 김윤환 의원의 아호. 본인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성격이나 특징 등에 의해 지어주다보니 조선조 학자 김정희는 ‘추사’를 비롯, 5백3개나 되는 호를 갖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중문화·국제화·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예명이나 PC통신·인터넷ID가 또다른 이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선 마리온 마이클 모리슨·노르마 진이란 진부한 이름의 배우들이 존 웨인·마릴린 먼로라는 예명으로 대스타가 됐고, 신성일이란 예명이 너무 유명했던 한국의 배우는 국회의원 출마를 하며 강신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강신성일이 됐다. 또 ‘1524’ ‘syh’처럼 의미있는 숫자나 영문이름 첫자를 따거나 ‘흑장미’ ‘데릴라’ ‘momo’ ‘newspoet’ 등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고른 통신ID들은 지방이나 지구촌 건너편 이들까지도 친구로 만들어준다.

    무역업이나 호텔업 종사자들의 명함에서 영어이름을 발견하는 건 이젠 예삿일. 심지어 유치원생들조차 영어학원에서 부르는 영어이름을 따로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


    ◎이름 5자 넘으면 호적에 등재 못해

    고박초롱초롱빛나리양의 이름이 호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93년 이전 출생이었기 때문. 개정된 호적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이제 5자이상의 이름은 호적에 올릴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이같은 세부규정은 물론 한글만으로 된 이름을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아직 모르는 이들이 있다.

    우선 한자이름의 경우 지난 91년부터 인명용 한자수를 제한하고 있다. 현재 호적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총 2천9백64자. 한문이름이라도 한글만으로 호적에 올릴 수도 있는데, 나중에 다시 한문으로 바꾸고 싶을 때는 개명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한문과 한글이 섞인 이름(예:이힘찬)은 호적에 올릴 수 없다. 담당공무원의 실수로 이름이 호적에 잘못 기재되었을 경우에도 고치려면 개명신청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출생신고를 할 때 반드시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국적법이 개정되면 한국여성과 외국남성 사이의 자녀가 한국국적을 원할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 제임스딘’과 같은 이름도 가능해진다.

    심하게 놀림을 받는다든지 부르기 어렵거나 어감이 나쁜 이름은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름을 바꾸기를 원할때는 가정법원 또는 주소지나 본적지 법원에 ▶개명허가신청서1부 ▶호적등본1부 ▶주민등록등본1부 ▶보증인2인의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증명서와 도장 ▶인지대 및 신원조회·우편요금 7천7백80원 등을 가지고 신청하면 된다. 본인이 20세 미만이라면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신청할 수 있다.
    서류 제출 후 열흘 정도면 허가여부를 알려주는 통지문을 우편으로 받게 되는데, ‘허가’를 받은 경우 통지문을 가지고 본적지에 가서 신고하면 개명절차는 끝.

    1997년 9월 23일
    중앙일보 문화팀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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